소설가 이영도의 「파운데이션 완전판」 다시 읽기

파운데이션 추천사 디자인_카페용

오래된 애정 때문에 파운데이션 시리즈에 대한 추천사를 두드려 보려 하지만 솔직히 말해 한숨이 먼저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쓰여진지 60년이 넘는 SF다. 그 1권은 1.4 후퇴가 일어났던 그 해에 세상에 나왔다. 마지막 권은 비교적 최근에 쓰여지긴 했다. 한 20년 지났나. 그리고 지금은 21세기다. 여름으로 통하는 문 찾기를 포기하지 않던 고양이는 아마 영원한 여름으로 떠났을 테고 목성이 폭발해서 우리 태양계의 태양이 하나 늘어났어야 할 해도 이미 지났다. 타자는 해리슨 포드가 레플리컨트들을 상대로 LA 건물 옥상 위를 뛰어다녀야 할 때가 몇 년 남았는지 우울하게 카운트다운하고 있다. 시간의 가혹한 흐름이 SF 대가들의 전용 놀이터였던 미래를 따라잡은 지금 그 옛날의 명작을 꺼내 읽어보면…… 좀 과장해서 말하면 가장자리에 용이나 인어 등을 그려놓은 옛날 지도 보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진부한 기분을 느낄지 모른다는 우려 외에 SF 애호가로서 느끼는 복잡한 기분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의 좁디 좁은(이 말 몇 번 더 반복하고 싶다.) SF 도로를 언제까지 똥차가 막고 있을 참이냐는 비난은 사실 꽤 뼈아프다. ‘댄 시먼스나 버너 빈지는 이미 원로이고 그렉 이건도 중견이 넘은지 오래인데 언젯적 아이작 아시모프를 다시 꺼내는 거냐?’ 누가 이 질문에 명랑하게 대답할 말 좀 알려주면 좋겠다. 슬프다. 아시모프가 SF계에서 생태계 파괴자 비슷하게 되다니. 시장이 넓었다면 조금도 문제 될 일이 아니건만. 이 지경까지 오면 추천이 아니라 변호를 해야 할 것 같은 심정이다. 다른 SF들을 소개할 수 있는 지면을 꼭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출간에 할애해야 하는가?

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좋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니까.

물론 장엄하다거나 참신하다거나 기발하다거나 하는 수식어는 유통 기한 다 지났다. 쌓여온 장르의 역사 때문이다. 선배의 찬란한 업적들 위에 설 수 있었던 후배들은 파운데이션의 우주를 소탈하게 보이게 만들 세계들을 이미 여러 번 펼쳐보였다. 이제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결코 그런 식으로 자기 어필을 할 순 없다. 스타일은 낡았고 플롯은 평이하다. 고맙게도, 애초에 그건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가장 중요한 매력이 아니다. 저 유명한 심리역사학 때문에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미래 예측을 목적으로 하는 글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명백히 과거를 돌아보는 글이다. 다른 잘 쓰여진 SF들과 마찬가지로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맞아. 내 경험으로도 그래. 사람은 이렇게 행동하지.’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어쩌면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일지도 모르는 덕목을 충실히 가지고 있으며 그 때문에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 해도 그 본질적 흥미를 침해당하진 않는다. (애석하게도 바로 그 때문에 어떤 인물의 등장 이후로 이야기의 힘이 좀 떨어진다. 읽고 스스로 판단할 분들을 위해 상세히 쓰진 않겠지만 가장 중요한 엔진이 꺼진 지점이 있다.)

하지만 그 덕목만으로는 그것이 SF로 쓰여져야 하는 정당성까지 담보하진 못한다. 그건 그냥 문학이 가져야 할 덕목이다.
이것이 서두에 타자가 앓는 소리를 한 이유다. 작가가 세심하게 설정한 독특한 환경에 인간을 집어넣고 그 환경 하에 인간의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세계에 대한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이 다른 장르, 이를 테면 팬터지면 안 될 이유가 없다. 아서 경이 ‘SF와 팬터지를 구분하기 위해 이미 많은 피땀이 흘렀다’고 말한 까닭도 여기 있다. 문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두 장르는 같은 민족인 것이다. 결국 장르 고유의 정서가 애호의 기준이 될 뿐인데 집필 후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SF적인 정서’를 많이 잃었다. 애초에 하드SF도 아니었지만.

그래서 제안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SF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굳이 SF로 접근하진 말길 바란다. 미안하지만 당신 너무 늦게 태어났다. 당신과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동정심을 가지고 말하면 아시모프가 너무 일찍 태어났다. 그러니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읽으려면 문학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떠올려라. 그 옛날 인간과 똑같은 희로애락을 느끼는 신과 반신과 정령과 괴수들이 자아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청중들을. 그들의 기분으로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청중에게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좋은 보답을 할 것이다.

―이영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