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퍼스트레이디

조은희

출판사 황금가지 | 발행일 2007년 7월 30일 | ISBN 978-89-601-7023-0

패키지 반양장 · 신국판 152x225mm · 300쪽 | 가격 12,000원

분야 기타

책소개

권력의 정점에 섰던 한국의 퍼스트레이디들, 그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초대 퍼스트레이디 프란체스카에서 이희호 여사까지 대한민국 50년의 ‘숨은 권력자’ 역대 대통령 영부인들의 역사를 이야기로 풀어냈다.

편집자 리뷰

건국 이래 50년간 급변하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청와대의 여주인으로서 현대사의 한 자락을 수놓아 온 대한민국 퍼스트레이디들을 정면으로 다룬 책 『한국의 퍼스 트레이디』가 (주)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저자인 행정학 박사 조은희는 이화여 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미국 아메리칸 대학과 조지타운 대학에서 각 각 선거 캠페인 최고전문가 과정을 수료하고 대통령학을 공부했으며, 1998년 청와 대 비서관으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한국에서 최초로 본격적인 대통령 영부인 연구 에 뛰어들어 논문을 발표하였다. 《여성신문》 등 언론을 통해서 한국의 영부인에 관한 소고를 끊임없이 발표해 오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그간의 연구와 취재를 종 합하여 초대 프란체스카 여사에서 가장 최근의 이희호 여사까지 8명의 대한민국 퍼스트레이디들을 다룬다.▶ 대통령을 움직인 여인들, 무엇이 그들을 퍼스트레이디로 만들었나? 대통령은 선거로 선출된 최고위 국정 담당자이다. 그 배우자인 대통령 영부인의 위치는 어떤 것일까?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까지 9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따라서 퍼스트레이디도 초대 프란체스카 여사부터 공덕귀, 육영수, 홍기, 이순자, 김옥숙, 손명순, 이희호, 권 양숙 여사 등 9명이 있다. 이 책은 현재 청와대에 있는 권양숙 여사를 제외하고 8 명의 역대 영부인들을 빠짐없이 지근거리에서 관찰하며 그들의 입지와 활동, 개인 사와 공적을 면밀히 살핀다.대통령 영부인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최고 통치자의 반려로 권력의 심장부에 동행한 사람들이다. 화려한 조명을 받은 한편 국민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 았던 수인이기도 했다. 헌정 50년간 민주주의의 발전 도상에서 최고 권력자였던 대통령을 남편으로 둔 영부인들, 그들이 공적 사적으로 국가의 발전에 어떠한 영 향을 미쳤으며 대내외적으로 어떤 활동에 열정을 쏟았는지 등 인간적 측면과 공과 를 약식 전기 형식으로 정리했다.▶ 헌정 50년 퍼스트레이디의 위상과 역할을 돌아본다 어떤 방식이든 선출을 통해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에 비해, 비선 출직인 영부인의 역할은 시대에 따라 시각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다. 8명의 영부 인들은 헌정사의 발전과 더불어 각각 다른 포지션을 취하고 각자의 자리를 지켰 다. 드러나지 않는 내조에 자신의 역할을 한정한 사람도 있고, 활발한 대외 활동 을 통해 대통령이 할 수 없는 부분에서 힘을 다하고자 했던 사람도 있었다. 시대 마다 영부인에게 요구되는 태도는 우리 여성관의 변화를 보여 주기도 했으며, 이 에 답한 영부인들의 활동 역시 사회의 변화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권력의 정점 에 고립된 대통령에게 여론 전달 창구로서 역할을 했던 육영수 여사나, 영부인의 자리에서는 순종하는 아내와 며느리였지만 정작 권좌를 떠난 후 사회운동가로 변 신한 공덕귀 여사 등의 활동은 아직 여성들의 사회적 입지가 좁았던 시절 그들의 최선을 보여 준다.‘너무 튀어서도, 너무 죽어서도 안 되는’ 줄타기를 하며 8명의 역대 퍼스트레이 디들이 취해 온 고심과 노력은 현대사와 얽힌 그들의 개인적인 성공과 실패, 영욕 의 행적과 교차된다. 이야기처럼 쉽게 술술 읽히는 간결한 일대기는 최고권력자의 아내 이전에 한 사람의 비범한 여성이었던 8명의 인간적인 면모와 젊은 시절, 가 정, 자녀에 관한 내밀한 부분까지도 생생하게 그려 내고 있다.1. 푸른 눈의 퍼스트레이디, 대한민국의 초대 영부인 프란체스카 (Franchesca, Rhee:1900.6~1992.3)아내의 지혜와 용기, 인내와 슬픔, 노력이 나로 하여금 오늘 이날을 맞게 했다. ― 이승만 전 대통령최초 공개: 양아들 강석이 자결과 이 대통령의 하야를 기록한 친필 비망록 (54쪽)―이승만 대통령의 하야(60년 4월 26일 자정); resigned 12 p.m―강석의 가족, 이기붕 일가의 죽음(60년 4월 28일 새벽); Kangsuk x Family―경무대에서 이화장으로 이사(28일) moved Ewhachang 2:30 p.m―강석의 장례식(30일) 10 a.m furenal2. 순종적인 아내이자 며느리에서 자주적 사회운동가로, 공덕귀 (1911.4~1997.11)그때 프린스턴대학으로 유학을 갔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 공덕귀 여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신학자였던 공덕귀 여사는 전문성과 능력을 갖췄지만, 내각 제하의 대통령인 남편 윤보선의 처지와 위상을 고려해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최소 화했다. 청와대에서 두 아이와 함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그녀는 1년 8개월 동안 청와대에서의 자신의 처지를 ‘조롱안의 새’로 표현했다. 그녀는 퇴임 이후 에 적극적인 사회 활동에 나섰다. 그녀는 ‘전직 영부인’이라는 타이틀을 과시용 이 아니라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한 인권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전념하는 용기와 열 정을 보였다. 3. 죽어서도 빛나는 영원한 \’국모\’, 육영수 (1925.11~1874,8)그곳은 나의 유일한 낙원이요, 태평양보다도 더 넓은 마음의 안식처이다. ― 박정 희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훌륭한 대통령 부인으로 꼽히고 있다. 38 세라는 젊은 나이에 영부인의 자리에 올랐던 육 여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영 부인 비서실을 만드는 등 영부인의 롤 모델(ROLE MODEL)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했 다. 육 여사는 ‘양지회’ ‘육영재단’ 등 ‘퍼스트레이디용 사업(PET PROJECT) ’을 통해 사회봉사활동을 수행하면서 청와대로 쏟아지는 각종 민원에 일일이 답 장을 보내는 등 인간적 면모를 보였다. 또 청와대 안주인이 되면서 ‘청와대의 지 독한 야당’이 되겠다고 국민 앞에 공언함으로써 군인 출신인 남편의 강한 이미지 를 개선하고, 남편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자체적으로 걸러내는 역할을 했다. 그 녀는 1965년부터 나병(한센병)환자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이는 박 전 대통령의 지지기반 확대로 연결되기도 했다. 4. 소박하고 서민적인 퍼스트레이디, 홍기 (1916.3~2004.8)공평하고 원칙을 중히 여기며 남편이 청렴할 수 있게 하는 데 내조의 공이 큰 어 른이었습니다. ― 최흥순 최규하 전 대통령 비서실장영부인이 되어 1980년 8월 16일, 남편의 대통령직 사임과 함께 청와대를 떠나기 까지 약 8개월 동안 재임한 홍 여사는 우리나라 역대 영부인 중 가장 짧은 임기를 수행한 영부인이다. 홍 여사의 일생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유학생에서 국가 최 고통치권자의 자리에까지 남편이 승승장구 출세가도를 달리는 엘리트 공직자였음 에도 불구하고, 잡음한번 없이 한평생 자제하는 내조자의 모습을 지켰다는 점이 다. 10 여 년 동안 남편 없이 살림을 꾸려간 종갓집 맏며느리였던 홍기 여사는 전 혀 대통령 부인답지 않는 ‘이웃집 할머니’같은 편안한 분위기를 풍긴 영부인이 었다.5. 화려한 권좌와 지옥 같은 나락을 오가다, 이순자 (1939.3~) 나는 내 모든 것을 그분의 상황 속으로 던져 버리기로 결심했어요. ― 이순자 여 사40대 초반의 젊은 대통령 부인다운 ‘당당함’을 지녔으나 ‘대통령 몇 발자국 뒤 에서 내조를 했던 육영수 여사와 대조적으로 대통령 옆에 나란히 서는 평등부부의 모습’(장명수 한국일보 이사)을 보인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는 군사정권의 출범이 라는 부정적 요인들과 겹쳐 오히려 국민적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 여사는 조기 교육기관인 ‘새세대육영회’를 만드는 등 교육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는데, 이와 맞물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조기교육 강화와 함께 과외금지, 두발자율화 단행 등 교육 혁신을 단행했다. 또한 이 여사는 심장병 환자를 돕기 위해 새세대 심장재단 을 설립하였고 재단은 84년 창립이후 현재까지 22년 동안 2만 4천여 명의 심장병 환자의 수술을 지원했다. 이 여사는 남편의 퇴임전까지는 여성으로서 어느 정도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퇴임이후 백담사 유배와 남편의 사형선고 등 심한 역풍을 맞았다. 영부인으로서 그녀의 일생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극적인 삶이었 다고 할 수 있다. 6. 그림자처럼 조용한 내조형 파트너, 김옥숙 (1935.8~)당시 부속실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영부인 활동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도록 하 는 것’이었다. ― 청와대 핵심 관계자임기를 제대로 마친 역대 영부인들 중 김 여사만큼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퍼스트 레이디도 많지 않다. 김 여사는 재임 중 당 한건의 인터뷰도 하지 않았음으로써 ‘그림자 내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녀는 역대 영부인들 중 어록이 없는 유일한 영부인으로 꼽힌다. 그녀는 불가피한 공식적인 의전행사를 제외하고는 대 외활동을 자제하는 등 역대 대통령 부인 중 가장 조용히 역할을 수행했는데, 이러 한 행보가 ‘내조형’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켰다.7. 한 발 뒤로 물러난 현모양처, 손명순 (1927.12~)그녀는 우리 가족의 드러나지 않는 중심이며, 나는 그녀에게서 또 다른 어머니를 느낀다. ― 김영삼 전 대통령손 여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단독으로 외국 순방을 한 대통령 부인이다. 그녀 는 95년 9월 유엔창설 50주년을 맞아 중국 북경에서 열린 유엔 제4차 세계여성회 의에 단독으로 참석했다. 소박한 성품과 굳센 의지를 지닌 외유내강형의 손 여사 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래서 87년 대선 때는 남편의 일요일 선거 유세를 막 기도 했다. 그러나 92년 대선에서는 평균 하루에 3-4군데, 총 498군데 사찰을 섭 렵 불교도의 마음의 문을 여는 등 남편의 대통령 만들기 1등 공신의 역할을 톡톡 히 했다. 야당 총재 시절 상도동 YS 자택에서 제공했던 ‘손명순 여사표 시래기 국’은 당시 정계와 언론 관계자들에게 맛있는 음식으로 손꼽힐 정도로 유명 했 다. 손 여사는 여성역할 변화가 두드러진 1990년대라는 시대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성단체의 어떤 직책도 맡지 않는 등 여성단체와 ‘일정거리’를 유지했다. 또한 재임 기간 내내 일체의 언론 인터뷰를 거절하는 등 조용한 처신으로 일관했다.8. 대통령을 만든 정치적 동반자, 이희호 (1922.9~)남편의 의견을 단순히 대변하지 않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한 사 람의 정치인으로 이 여사를 봤다. ― 예춘호 전 국회의원이 여사는 대통령의 단임 임기가 시작된 1980년 이후 영부인들 중 가장 훌륭한 영 부인으로 꼽힌다. 이 여사는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이 여사는 젠더 이슈를 직접 제기하고, 그것을 움직여나간 첫 영부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정부에서 는 여성운동가 출신 대통령 영부인이라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여성 관련 이슈들 이 쉽게 풀렸다. 이 여사는 또 재임 중 처음으로 북한을 공식 방문한 영부인이기 도 하다. 이 여사는 또 역대 영부인 중 가장 고학력의 대통령 영부인으로 퇴임 후 에도 재임 중 만들었던 영부인 사업인 ‘사랑의 친구들’과 ‘한국여성재단’의 명예총재와 명예고문 등 다양한 분야의 명예직을 맡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최초 의 영부인이기도 하다.훌륭한 퍼스트레이디는 대통령의 시야를 넓혀주고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녀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남편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느냐에 따 라 그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의 성공여부가 좌우되기도 한다. 학계에서 퍼스트레이 디를 ‘제1의 특별조언자’로 지칭, ‘제2의 특별조언자’인 부통령보다 더 영향 력 있는 인물로 규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17대 대선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를 바람직한 퍼스트레이 디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예산지원 등 이에 따른 제도적 정비에 대한 논의가 활발 해지기를 기대한다.

목차

그들은 어떻게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는가푸른 눈의 퍼스트레이디, 대한민국의 초대 영부인 프란체스카순종적인 아내이자 며느리에서 자주적 사회운동가로 공덕귀죽어서도 빛나는 영원한 \’국모\’ 육영수소박하고 서민적인 퍼스트레이디 홍기화려한 권좌와 지옥 같은 나락을 오가다 이순자그림자처럼 조용한 내조형 파트너 김옥숙한 발 뒤로 물러난 현모양처 손명순대통령을 만든 정치적 동반자 이희호퍼스트레이디의 활약을 기대하며

작가 소개

조은희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미국 아메리칸 대학에서 선거 캠페인 최고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미국 조지타운 대 방문 교수를 지내면서 미국 대통령학을 연구했다.
<경향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1998년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 부처의 각종 행사 참석과 일정을 조율하는 행사기획 비서관을 거쳐 문화관광 비서관으로 일했다. 이후 <우먼타임스>에서 편집국장을 맡았고, 현재는 한양대 겸임교수로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여론과 선전론’을 강의하고 있다. 또한 양성평등실현연합 여성정책연구소 대표를 역임 중이다.
15여 년간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및 영부인과 가족, 보좌진을 다각도로 취재하였으며 기독교방송, 매일경제 TV, SBS, <여성신문> 등에 한국과 미국 퍼스트레이디를 주제로 강연과 기고를 해 왔다. 한국정책학회, 행정학회 학술대회에 논문 「한국 대통령 부인의 평가에 관한 연구」,「대통령 배우자의 바람직한 역할과 자질」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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