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4년 10월 18일 | ISBN 979-11-70524-51-9 | 가격 7,900원
“사탄 실직이라는 말을 들어 보지 않으셨습니까?”
SNS를 통해 사람들에게 악의를 전파하는 신종 악마와의 거래부터
지시 사항과 대응 매뉴얼만으로 미지의 섬뜩함을 자아내는 규칙괴담까지
지야 작가가 선보이는 트렌디한 공포의 향연
매뉴얼 규칙괴담 테마소설 단편집 『에덴브릿지 호텔 신입 사원들을 위한 행동 지침서』에 참여하고 장르소설 온라인 플랫폼 브릿G에서 특색 있는 작품 활동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지야 작가의 첫 단편집 『사탄 실직』이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악마와의 거래라는 고전적 소재를 ‘사탄 실직’이라는 ‘밈’을 활용해 트렌디하게 풀어낸 표제작을 비롯해, SNS, 단체채팅방, 유튜브 등 대중의 관심이 몰린 소셜 플랫폼을 무대로 원한과 질투, 숭배 심리, 과시욕, 복수심 등 음침하고 비틀린 인간군상의 면모가 생생하게 드러나는 다채로운 작품들이 수록되었다. 뿐만 아니라 메타버스와 증강현실 등 기술 발전 세태를 반영한 섬뜩한 SF부터 마비노기 귀신 사건이 모티브로 등장하는 게임 호러, 이세계 엘리베이터 괴담으로 들여다보는 심연의 공포, 곱씹을수록 찝찝하고 기묘한 여운을 선사하는 규칙괴담까지, 저마다 개성 있는 주제와 콘셉트가 돋보이는 총 10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 사람들의 손끝에서, 입술을 타고, 머릿속에서 풍선처럼 부푸는 악의가 있다. 둥근 악의를 키우자, 수확하자, 한 아름 안아 들고서 결실의 기쁨을 누리자. 그리고 푸른 바람에 색색의 사악한 마음들을 경건하게 실어 올려 배웅하자.” ―「사탄 실직」 중에서
육화된 악마의 존재를 통해 새롭게 접근하는 21세기 악마와의 거래담을 필두로
인간 내면의 어둠과 그늘을 조명하는 우리 옆의 기담
수록작 「사탄 실직」과 「이제는 작별할 때」에는 공통적으로 인간에게 모종의 거래를 제시하는 악마가 등장한다. 인간사회에서 벌어진 지독한 악행을 접했을 때 흔히 통용되는 ‘사탄도 울고 갈 악랄함이다’, ‘사탄이 실직할 수준이다’ 같은 인터넷상 표현을 구체화시켜, 실체화된 존재로서 등장하는 악마가 인간에게 어떻게 악의를 전파시키고 교묘하게 원한을 증폭시키는지를 새로운 접근법으로 담아낸다. 표제작 「사탄 실직」의 악마는 정장을 잘 차려입은 인간의 형체에 검은 까마귀 얼굴을 지닌 존재로, 바야흐로 인간의 사악함이 악마의 발상을 능가하게 된 탓에 다니던 회사에서 실직할 위기에 처한 상태다. 이처럼 악마들이 체계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지닌 조직을 기반으로 활동한다는 설정은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C. S. 루이스가 인간과 악의의 본성을 고찰한 저작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도 그 원류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C. S. 루이스는 경영과 행정의 세계에 도래한 악의 형태를 고찰하며, ‘지옥에 대한 상징으로 경찰국가의 관료조직이나 아주 비열한 사업을 벌이는 사무실 비슷한 것을 택하게 되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탄 실직」의 악마는 현대사회의 병폐가 압축된 소셜미디어에 주목하는데,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무단으로 짜깁기해 자극적인 SNS 바이럴로 엄청난 유명세를 얻는 주인공을 무차별 악의 전파에 최적화된 수단으로 삼는다. 또한 「이제는 작별할 때」의 악마는 은행 앱의 친근한 캐릭터에 깃들어 주인공의 케케묵은 원한 거래를 종용하며 자기경멸을 바탕으로 한 냉소와 복수심을 자극한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 단톡방에 소비왕과 거지왕이 있다」는 허영과 사치, 쾌락에 저당잡힌 존재가 파멸해 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담담한 서간체로 전개되는 「너의 죄를 사하노라」는 탐식이라는 욕망을 대리하는 먹방 유튜버와 ‘죄식자(Sin-eater)’라는 중세시대 직업을 연결시켜 서늘한 뒷맛을 선사한다. 이처럼 인간의 다양한 본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은 ‘당신 옆의 기담’이라는 부제처럼 우리 내면의 그늘과 어둠을 투영하며 친밀하면서도 오싹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 소설은 결말을 닫을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사탄의 악을 능가한 인간의 죄는 어디까지 교묘하고 철저해질 것인가. 악의 연대기가 끝날 수 있을 리 없다.” ―제야(작가 및 서평가), 「사탄 실직」 리뷰 중에서
PART 1. 욕망은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사탄 실직
우리 단톡방에 소비왕과 거지왕이 있다
이제는 작별할 때
너의 죄를 사하노라
라이프 스트리밍
잊힌 일곱 번째 영웅과 보라강물던전 괴담
7년 뒤 7월의 7층 엘리베이터에서
PART 2. 우리는 규칙을 어기지 않는다
부산 서천구 원웅재단소 근무 수칙
부산지방기상청 강설대책본부 신규입사자 근무수칙 전달의 건
[공지] 해빗버거 키오스크 상담 관련 안내드립니다
「사탄 실직」 리뷰
■주요작 소개
사탄 실직
“가빈이 눈여겨본 방식은 SNS에서 이루어지는 악의의 흐름을 포착하는 것이었다.”
양질의 악의를 공급받을 수 있는 인간을 찾으라는 회사의 지령을 받은 악마 가빈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화제의 SNS 계정을 운영하는 강을현을 찾아온다. 악마는 강을현에게 그저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SNS를 운영하기만 하면 그 대가로 돈을 주겠다며 악의 외주 계약을 제시한다.
우리 단톡방에 소비왕과 거지왕이 있다
“나도 거기 들어갈 수 있어?”
고등학생 시절 각자의 소비 내역을 공유하는 학급 단톡방 ‘거지방’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던 지현은 미정을 은근히 따돌리며 묘한 쾌감과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성인이 된 후 미정과 처지가 완전히 역전되자 이에 굴욕감과 패배감을 느낀 지현은 미정이 새롭게 활동한다는 ‘절약방’에 참여하고자 한다.
이제는 작별할 때
“내 원한이 숭고하다고?”
지지부진한 퇴사 후 남은 급여와 만기 적금을 확인하며 은행 앱을 둘러보던 내게 은행의 마스코트로 보이는 분홍색 악어 캐릭터가 적합한 금융 상품을 추천해 주겠다며 메시지를 띄운다. 그러나 막상 안내받은 상품 추천 페이지는 성격 검사라도 하듯 다소 기이한 문항들로만 구성되어 있어 어딘가 미심쩍기만 하다.
너의 죄를 사하노라
“너는 나에게 화상 같았어. 잊고 살아가고 싶어도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는 흉터.”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의 트라우마로 성인이 된 이후에도 대인관계와 섭식 문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는 어느 날 우연히 먹방 유튜버가 된 ‘너’를 발견하고, 어떤 삶의 목표를 다잡게 된다.
라이프 스트리밍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와 그걸 지켜낸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다.”
유명 가족 유튜브 채널의 구성원이던 나는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얼굴에 큰 흉터를 지니게 되지만, 구독자들에게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아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세 가족이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꾸며 왔다. 그리고 생일을 맞이해 준비한 라이브 방송을 마지막으로 채널 운영을 종료하기로 결심하는데, 나는 라이브 방송 직전 걸려 온 전화를 통해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잊힌 일곱 번째 영웅과 보라강물던전 괴담
“그들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약 20년 전에 있었던 한 사건이 떠올랐다.”
유튜브 괴담 채널을 운영하는 나는 SNS를 통해 「칠색섬광」이라는 게임의 괴담을 만드는 유저 이벤트에 참여해 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는다. 이에 흥미를 느낀 나는 문득 20년 전 불거졌던 한 게임의 아바타 귀신 소동에 착안해 게임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괴담을 설계해 보기로 한다.
7년 뒤 7월의 7층 엘리베이터에서
“매년 7월마다 일어나는 일이 있다.”
나는 엘리베이터 괴담에 대해 찾다가 7년 전 발생한 의문의 실종 사건을 회고하는 블로그 글을 읽게 된다. 심야 3시경 10층 이상의 빌딩에서 엘리베이터를 탄 채 특정 규칙에 따라 버튼을 조작하면 이세계(異世界)로 갈 수 있다는 엘리베이터 괴담이 유행하던 시절, 한 쌍둥이 실종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