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마담 세크러터리
원제 Madam Secretary
글 매들린 올브라이트 | 옮김 김승욱, 백영미, 이원경
출판사: 황금가지
발행일: 2003년 10월 20일
ISBN: 89-827-3484-8
패키지: 반양장 · 신국판 152x225mm · 452쪽
가격: 13,000원
분야 기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국무 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자서전.
망명자의 딸에서 유엔 대사를 거쳐 미국의 국무 장관이 되기까지.숨 막히는 전 세계 역사의 현장을 발로 뛴 올브라이트의 생생한 체험을 읽는다.
제3부 마담 세크러터리온전하고 자유로운 유럽 건설골칫거리 후세인중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와이 리버 각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만남독재자들과의 대결여성 국무 장관, 빌 클린턴, 힐러리 그리고 르윈스키제4부 평화의 추구특별한 악의 세력밀로셰비치가 문제다코소보, 평화의 추구북대서양 조약 기구 동맹의 승리글로벌 시대의 자유와 질서은둔의 왕국, 북한소득 없는 탐색나에게 그저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면
이 책은 20세기의 마지막 4년 동안 미국의 국무 장관으로 국제 정세의 한가운데서 전 세계를 누빈 미국의 제64대 국무 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자서전이다. 체코슬로바키아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리고 유엔 대사를 거쳐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 장관이 되기까지 올브라이트는 자신이 걸어온 66년의 세월을 풀어 놓는다.
이 책은 역사적인 기록과 함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들을 개인적인 증언과 결합시켜 놓았으며 여성 특유의 통찰과 따듯한 유머가 어우러져 있는 상세하면서도 파노라마와 같은 이야기로 가득한 회고록이다. 특히 그녀는 이 책에서 2000년 10월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 위원장과 회담한 내용을 비롯하여 2002년 11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난 이야기 등 한반도 및 그 관련 정세에 관해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서른아홉 살이 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기까지 공직 생활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 미국 역사상 가장 고위직에 오른 여성이 된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남보다 늦게 시작했기에 분주히 움직였다. – 서문 중에서
내용 소개
이 책은 올브라이트의 ‘사생활’과 ‘공직 생활’을 적절히 혼합해 놓았다.제1권 사생활을 다룬 부분에서는 망명자의 딸로서 미국 사회의 이방인인 그녀가 사산과 이혼의 고통을 이겨 내고 국무 장관이 되기까지의 질곡 같은 삶을 소개한다.제2권 공직 생활을 다룬 부분에서는 세 아이의 어머니로 정치에 입문하여 유엔 대사를 거쳐 마침내 여성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공직에 올라 지구촌 곳곳을 다니며 국제 분쟁을 해결하면서 만났던 각국의 지도자들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현대사의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제1권
◈ 제1부 마들렌카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로
1937년 5월 15일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태어난 마들렌카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두 살 때 조국을 떠난다. 망명 정부에서 정보 분야를 담당하던 아버지를 따라 런던에서 생활하던 그녀의 가족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조국으로 돌아갔지만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화되면서 베오그라드를 거쳐 대서양을 건넌다. 조국 체코슬로바키아를 뒤로 하고 미국행 선택한 것이다. 웰즐리 대학 시절 미국 굴지의 미디어 그룹인 콕스 가문의 상속자 중 한 명인 조셉 올브라이트를 만나 졸업 후 곧바로 결혼한다.셋째 아이를 사산하기도 했지만 세 아이를 키우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던 마흔다섯 살의 그녀는 어느 날 “당신보다 더 젊고 예쁜 여자가 좋다.”라는 남편의 일방적인 이혼 통고를 받는다. 이혼 후 그녀는 조지타운 대학 교수와 민주당 국제 외교 전문 위원, 상원 의원 보좌관 등의 일을 한꺼번에 맡아 일하면서 이혼의 고통에서 벗어나 정치적 경력을 쌓아 나간다.
◈ 제2부 열네 벌의 양복과 한 벌의 스커트
클린턴 행정부 1기 내각에서 유엔 대사로 임명된 올브라이트는 그때부터 미국의 대변자이자 남성 대사들 사이에서 유일한 여성 대사로 활약한다. 클린턴 행정부는 세계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곧 미국의 국익을 증진시키는 일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었고, 올브라이트는 미국을 대표하여 유엔 평화 유지 활동에서 미국이 더 큰 역할을 맡도록 노력한다. 그녀는 아프리카의 르완다와 발칸 반도에 유엔 평화 유지군을 파견하는 데 앞장섰지만,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미 의회의 반대에 부딪혀 적잖은 시련을 겪기도 했다.
내가 유엔에서 일하면서 가장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은 미국과 국제 사회가 소말리아 사태를 초기에 막을 수 있었는데도 그 조치를 취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분쟁 지역의 당사자들은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 정치 체제를 지니고 있기에 각지의 상황은 저마다 달랐다. 따라서 강압적이거나 획일적인 접근법은 먹혀들지 않는다. 내가 배운 교훈은 지극히 명백한 것이었다. 국제 사회는 자연적 혹은 인위적 참사로 인해 위기에 처한 국가를 도와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제2권
◈ 제3부 마담 세크러터리
1997년 클린턴 행정부 2기 내각에서 국무 장관으로 임명된 그녀는 정치 인생에서 황금기를 맞는다. 그러나 취임 후 체코의 한 유대인으로부터 자신의 가족사에 대한 편지를 받은 얼마 후 ≪워싱턴 포스트≫에 자신이 유대인이며 조부모와 외조부가 아우슈비츠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서 숨졌다는 사실이 보도되어 큰 논란이 일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유대인이기에 앞서 미국인이자 체코인이며 혈통보다는 국가와 가치관이 더 중요하다는 강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녀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중재를 맡아 유혈 분쟁을 막기 위해 정상 회담을 주재하고 코소보에 나토 연합군을 파견하는 데 앞장서 밀로셰비치의 인종 청소를 막는 등 임기 동안 세계 각지의 분쟁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대외 정책의 목적은 자국의 이익과 가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다른 나라의 정책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때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은 부드러운 말에서 크루즈 미사일까지 다양하다. 인내심을 가지고 이러한 방식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것이 외교의 기술이다. 국제적으로 존중받기 힘든 나라를 그 반대편으로 끌어당기는 것을 목표로 할 경우 가장 어려워진다. 나는 국무 장관으로서 특히 격동하는 이란, 고집불통 리비아, 전투적인 쿠바를 대할 때 더욱 힘이 들었다. – 본문 중에서
◈ 제4부 평화의 추구
올브라이트는 임기 마지막 해인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 위원장을 만난다. 북한은 이미 핵 개발 문제와 미사일 수출 문제로 한반도에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었으며 1998년에는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여 태평양에 추락한 사건에 대해 추궁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본 북한의 모습과 김정일 위원장을 소개하면서 그의 성격과 정치관, 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주의 모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코소보 사태를 풀기 위해 유교 연방 폭격까지 마다하지 않던 강한 국무 장관이었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유독 외교적 해결 방안을 고수했던 이유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 때문이라고 새롭게 밝히기도 한다.
자리에서 물러나며 나는 한반도에서 있었던 일들이 여러 방향으로 전재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가, 부시 행정부가 반드시 탐사하게 될 외교적 통로를 열어 놓았다고 생각했다. 정권 이양 기간에, 장관 지명자 파월은 내게 새로운 팀은 대략 우리가 떠난 지점에서 시작할 거라고 장담했다. 그렇지만 그와 세계는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걸 곧 알게 되었다. 2001년 4월, 부시 대통령을 만나러 워싱턴에 온 김대중 대통령은 새 행정부는 자체적으로 정책 검토를 끝낼 때까지 북쪽과 협상하지 않을 것임을 통고받았다. 2002년 여름, 부시 행정부는 마침내 진지한 대화를 시작하기로 했지만, 그때쯤에는 이미 새로운 골치 아픈 정보가 들어왔다. 그 다음부터 사태는 악화일로를 치달았다. – 본문 중에서
그녀는 국무 장관에서 물러날 때까지 북한 문제와 중동 문제의 돌파구를 찾으면서 또한 코소보에서 밀로세비치를 몰아내기 위한 목표를 위해 지속적으로 움직였다. 마침내 국무 장관 임기 말, 유고슬라비아에서 밀로세비치가 물러나면서 클린턴 행정부 외교 정책의 시험장이 되었던 발칸 반도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자 만족스럽게 그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
문에 붙인 이름표와 벽에 걸린 사진들은 해가 질 무렵 바뀔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정하지만 다소 냉혹하다. 그렇지만 역사는 제64대 국무 장관은 발을 질질 끌며 나가지 않았다고 기록할 것이다. 나는 그저 마지막으로 한번 둘러보고 클린 파월에게 남긴 내 작별 메모를 확인한 후 집무실을 떠났다. – 본문 중에서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신의 공직 생활을 몇 가지 교훈으로 정리한다. 첫째, 외교 정책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의 논쟁이 아니다. 우리는 다원적인 제도를 강화하여 때로는 비민주 국가와 함께 일해야 했다. 둘째, 국제적인 활동을 하고 계획을 갖기 위해서는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해외에서 민주주의 실천을 지원하지 않는 외교 정책은 어떠한 경우라도 국익을 제대로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넷째, 미국이 올바른 역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다른 국가를 억누르자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문제를 떠맡는 데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