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데이션 추천사 디자인_카페용2

 

파운데이션 재발간을 축하하며
: 파운데이션에 얽힌 추억

초등학생 시절 나는 ‘우주인 살인사건’이라는 이름의 소설에 푹 빠져 살았다. 그때 나는 모든 책 제목이 ‘우주인’으로 시작되는 해문 아동용 SF 문고에 빠져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 책은 압도적이었다. 나는 그 책을 정말 좋아해서 표지가 떨어져 나가도록 읽고 또 읽었다.
몇 년이 지난 뒤에 나는 ‘강철도시’라는 이름의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어렸을 때 본 『우주인 살인사건』의 이야기가 그대로 실려 있는 것을 알고 몹시 당황하고 말았다. ‘아동용 축약판’의 존재를 전혀 몰랐던 나는 완전히 혼란에 빠졌고, 왜 같은 작가가 같은 소설을 두 번, 그것도 다른 형태로 썼는지 어리둥절해 했다. 게다가 이미 잘못 끼워진 나사 때문에 전개가 약간 엇나갈 때마다 내가 아는 그 소설이 아니라며 저항하기까지 했다.
정신이 다소 든 뒤에 이전 것이 가짜였다는 것을 받아들인 뒤에야 나는 다시 한 번 진짜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 이야기는 그냥, 완전히 엄청났다.
그 엄청난 책이 여섯 권이나 나오더니 ‘파운데이션’이라는 이름의 책이 같은 디자인으로 이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당시 출간된 「파운데이션」 1, 2권은 본편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 외전으로(새 출간본에서는 6권 『파운데이션의 서막』) 「로봇」 시리즈에서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였다. 나는 매우 자연스럽게도, 「파운데이션」을 「로봇」의 속편이라고 굳게 믿고 앞으로 펼쳐질 아홉 권이나 되는 독서에 흥분해서 잠도 못 이룰 지경이었다.
물론 「파운데이션」은 「로봇」 시리즈와는 아무 관계없는 시리즈다. 「로봇」 시리즈와의 연계성은 처음과 끝에만 아련하게 등장할 뿐이다. 하지만 나사가 잘못 끼워진 나는 왜 이 작가가 본편이 아닌 외전(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만 주구장창 쓰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언젠가 등장할 로봇만을 아홉 권 내내 기다렸다.
어린아이의 상상이란 참으로 원대한 것이라, 당시 나는 한 권 한 권 읽어 나가며 「파운데이션」의 결말을 수백 가지 버전으로 상상했었다. 그 결말은 당연히 「파운데이션」이 아니라 「로봇」의 결말이었으며, 아시모프라면 절대로 그려내지 않을 법한 유치장엄한 것들로 가득했다.
당연히, 「파운데이션」은 「로봇」의 완결편이 아니기에, 로봇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끝나는 결말에 너무 좌절한 나머지 이 책의 마지막을 다시 쓰겠다고까지 생각했었다. 물론 아이의 포부와는 달리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조금 시도해 본 뒤에 이 결말이 훌륭하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생각하면 참 우습게도, 나는 「파운데이션」을 제대로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완전히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독서를 완전히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홉 권을 다 읽고 나서였는데, 이미 다 떠난 기차였다. 스포일러를 당하고 본 영화처럼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여러 분들이 좋은 추천사를 많이 써 주시겠지만, 이 추천사는 오직 발간 순서를 제대로 맞춰 준 것에 대한 추천사다. 새로 보시는 분들은 나처럼 오해에 빠져 보는 일이 없을 것이다. 「파운데이션」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축복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핵심은 1~3권이며(구판에서는 3~5권), 한 젊은 과학자가 패기 있게 ‘다중의 심리’ 안에서 역사의 패턴을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가설을 세운 뒤,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시 반박하고 다른 가설을 들고 오며 또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학자로서, 또 소설가로서 행한 일생에 걸친 사고실험이다. 「로봇」 시리즈가 기계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는 모순이 없는 원칙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한 과학자의 일생의 사고 실험이었듯이,

돌이켜 보건대 내가 문학을 온전하게 체험할 수 있었던 시절은 어린 시절뿐이었다. 문학을 진실로 이해했던 시절도 그때뿐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흥분과 설렘으로 가슴 두근거렸던 날들을 기억한다. 그때에 나는 3D 아이맥스 입체 상영관 5.1채널 스피커 같은 것이 없어도 문장 몇 개로 우주를 넘나들곤 했다. 지금은 어떤 걸작을 본다 해도 도저히 그만한 경이를 체험할 수가 없다.
그러니 존재할 만한 책은 계속 존재하기를 원한다. 어떤 책들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서가에 꽂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으면 그 책을 진실로 접할 수 있는 독자들이 접할 수 없을 테니까.
헤르만 헤세는 어떤 작품이 50년을 간다면 영원히 간다고 했다. 시대가 변하면 작품이란 색도 바래기 마련이지만, 한 번 시대를 뛰어넘은 것은 영원히 뛰어넘는다고, 그런 작품은 영원히 낡지도 바래지도 않는다고 했다. 「파운데이션」 1권이 나온 것이 1951년이고 올해로 62년이 되었다. 유쾌하게 살다 가신 그 귀여웠던 노 과학자 분께서도, 과학소설처럼 진정으로 한시적일 것만 같은 문학도 시대를 넘어 영원할 수 있다는 증명을 더하고 있지 않나 또 생각하는 것이다.

―김보영(SF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