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은 어떻게 세계의 수도가 되었나

원제 長安の都市計劃

세오 다쓰히코 | 옮김 최재영

출판사 황금가지 | 발행일 2006년 12월 15일 | ISBN 89-8273-789-8 [절판]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73x225 · 286쪽 | 가격 15,000원

분야 기타

책소개

동양적 계획도시의 모범 사례인 장안(長安)에서번영하는 수도의 조건을 읽는다.

편집자 리뷰

장인(匠人)은 수도를 건설할 때 사방을 아홉 리로 정하고, 각 변에 문 세 개를 만든다. 수도 안에는 남북으로 아홉 개, 동서로 아홉 개씩 도로를 놓는다. 남북으로 놓인 도로의 넓이는 구궤(九軌)이다. 왼쪽에는 종묘를, 오른쪽에는 사직을 만든다. 앞에는 조정을, 뒤에는 시장을 둔다.― 『주례(周禮)』 권41 「고공기(考工記)」
일국의 수도를 넘어 세계의 중심이 된 도시, 장안번영하는 수도의 조건을 장안에서 읽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장안(長安)’의 첫 번째 뜻은 다음과 같다. “수도라는 뜻으로 ‘서울’을 이르는 말.” 중국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이 1000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서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주)황금가지에서 출간한 『장안은 어떻게 세계의 수도가 되었나』는 장안이 정통 수도의 대명사이자 문화 중심지의 상징이 된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 준다. 20년 넘게 장안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일본 주오 대학의 세오 다쓰히코 교수는 이 책에서 장안을 단순히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장안을 세계사의 흐름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계획도시이자 행정 수도의 모범으로 그리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수십 장의 지도와 사료를 토대로 장안의 도시계획을 치밀하게 분석했다. 장안이라는 도시를 주제로 과거와 현재, 유럽과 아시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에 길이 남을 수도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세계사의 흐름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최초의 계획도시
장안의 탄생 배경을 보면 여느 도시와 달리 세계사적 필요성에 따라 설계된 계획도시임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8·9세기 세계 최대의 국제도시였던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장안을 함께 분석하였다. 세 도시는 각각 크리스트교권, 이슬람교권, 불교권의 중심지로서 많은 인구와 정보가 모여 난숙한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이들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보면 저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콘스탄티노플은 원래 존재하던 그리스의 지방 도시였으나 4세기 로마 제국이 분열하면서 동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어 지중해 중심 도시로서 번영을 누렸다. 바그다드는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한 이후 압바스조가 아랍족의 근거지인 아라비아 반도와 페르시아인의 근거지인 이란 고원 사이의 접점에 건설한 도시로서, 페르시아인의 우주관에 따라 원형으로 설계되었다.한편 중국에서는 4세기 이후 유라시아 대륙의 유목지대와 농경지대가 활발하게 교류함으로써 그 접경지대에 장안이 탄생할 수 있었다. 장안은 콘스탄티노플이나 바그다드와 달리 격자형 도시계획에 따라 만들어졌는데, 이는 곧 장안이 이주자에 의해 건설된 계획도시라는 증거이다. 저자는 세계 각지의 격자형 도시 구조를 분석하여 ‘정주민이든 유목민이든 이주자가 새로운 지배지에 도시를 건설할 때 격자형 도시가 탄생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장안 또한 유목민 왕조가 중국의 화북 지방을 지배하기 위해 세운 도시임을 밝혔다.
우주의 중심이자 이상 도시로 설계된 장안
장안을 수도로 정한 수나라와 그 뒤를 이은 당나라는 정통 한족 왕조가 아니었기에 중국을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정통성을 최우선으로 확보해야만 했다. 이 두 왕조가 장안에 수도로서의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차용한 두 가지 원리가 바로 고대 중국의 \’우주론\’과 『주례(周禮)』에 기록된 \’이상도시론\’이다.먼저 우주론에 따라 장안성의 구조를 살펴보면 \’궁성→궁성을 둘러싼 황성→시장 및 거주 구역이 황성 앞에 펼쳐진 외곽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때 궁성의 중심은 황제가 기거하는 태극전(太極殿)이며, 이 건물은 천체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해가 지나는 길인 자오선 위에 세워졌다. 따라서 태극전은 천제(天帝)의 거처로 여겨진 북극성에 대응하여 지상의 중심으로서 세워진 것이다. 황제의 거처를 지상에 있는 하늘의 중심으로 상정한 데에는 우주의 질서를 지상에서도 실현하겠다는 목적이 숨겨져 있다. 앞서 예로 든 \’궁성→황성→외곽성\’으로 넓어지는 건축 구조는 다름아닌 \’하늘[天]→황제[天子]→관료→서민\’으로 이어지는 지배 질서를 주민들의 생활공간에 실제로 구현해 낸 것이기 때문이다.장안이 지닌 정통성의 또 한 가지 근거는 바로 『주례』에 따른 도시 건축이다. 주(周)나라의 왕조 제도를 기록한 유교 고전인 『주례』에 따르면, 왕도는 천자의 거주지답게 설계되어 그 상징성을 드러내야만 했다. 『주례』에는 왕도의 도로 개수와 성문 개수, 도로의 폭과 건물 위치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일찍이 당 장안성만큼 충실하게 『주례』의 원칙을 따라 건설된 왕도는 없었다. 이로써 장안은 중국 왕도의 전형이 되었다.
정치적 수도에서 문화의 수도로 ― 동서 교류의 중심지였던 장안
장안의 단지 황성과 도로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상업 구역과 사찰 구역, 관청 구역 등이 반듯하게 구획된 장안은 당 후기에 이르러 계획도시로서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 과거제도가 정착하고 국영 운하가 개발되면서 각국의 지식인과 상인들이 장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장안에서는 과거를 치르기 위해 찾아온 신라인, 선진 문물을 익히러 온 일본인, 비단을 낙타에 싣고 비단길을 건너온 소그드인, 배를 타고 바닷길과 운하를 따라 장안에 도착한 아랍인 등이 한데 어울렸다. 이들은 제각각 불경을 구해 필사하기도 하고 푸른 눈의 무희가 추는 이국의 춤을 감상하는가 하면, 거대한 도매상점들이 처마를 잇고 늘어선 거리에서 비단과 보석 등을 놓고 열띤 흥정을 벌이기도 했다.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남긴 기록은 당대 장안의 발전과 번영을 고스란히 알리는 증언이 되었다.
역사에 남는 수도의 조건 ― 정통성과 접근성
장안의 도시계획은 당대에 완성된 율령과 함께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 이로써 장안은 신라 시대의 왕경과 나라 시대 일본의 헤이안쿄 등 유교 문화권 수도의 모범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늘날 장안의 이름은 차가운 성벽이 아니라 따뜻한 언어 속에 남아 있다.행정 수도 이전 문제가 논쟁의 화두인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장안이라는 이름은 적잖은 무게감을 지닌다. 장안이야말로 정통성 확립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건설된 도시가 어떻게 문화의 수도로서 후대까지 동경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머리말 1부| 유라시아 대륙의 세 왕도 역사는 인간과 환경의 관계사이다 세 도시 이야기 – 콘스탄티노플·바그다드·장안 중국의 공간 구성과 왕도의 변천 2부| 장안은 우주의 왕도로서 설계되었다 장안의 도시 디자인 정통성을 주장하는 왕도 3부| 주민이 장안을 생활 도시로 만들었다 우주의 왕도에서 생활 도시로 번화가의 풍경 맺음말 주석 참고 문헌 저자 후기 옮긴이의 말 지명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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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오 다쓰히코

최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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