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매트리스
시간이 흐르면 달리 보이게 되는 것들에 관한,
거장 마거릿 애트우드의 아홉 가지 매서운 이야기
「케빈에 대하여」 린 램지 감독 영화화 작품 수록
『눈먼 암살자』와 『증언들』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 상을 두 차례 수상한 거장 마거릿 애트우드의 『스톤 매트리스』가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여성주의적 주제 의식을 담아 온 애트우드의 스타일이 빛나는 단편집으로, 작가의 말에 따르면 “옛날 옛적부터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에 빚지고” 있는 아홉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보통의 현실적인 단편 소설에서는 누구도 날지 못한다. 그러나 동화와 꿈, 이야기에서는 사람들이 제법 날아다닌다. 나는 그 부분을 작품에서 빼려 하지 않았다. 나 자신을 매우 제한된 사회 현실적 캔버스에 가두어 본 적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스톤 매트리스』 출간 후 한 인터뷰(《CTV 뉴스》, 2014)에서 밝힌 바와 같이 애트우드는 이 단편집에서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 환상과 은유라는 기법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판타지 소설가가 연인을 작품 속에 봉인하고, ‘괴물’ 여성이 등장하며, 잘린 손이 스스로 움직이기도 한다. 단, 표제작 「스톤 매트리스」는 노년 여성의 복수극이 서늘하게 그려지는 범죄 스릴러다. 이 작품은 「케빈에 대하여」, 「너는 여기에 없었다」를 감독한 린 램지가 영화화를 준비 중이며, 줄리언 무어와 샌드라 오가 출연할 예정이다.
“대체 지금 여자들끼리
어떤 이상한 짓을 벌이고 있는 거지?”
『스톤 매트리스』의 수록작 일부는 글 쓰는 업을 지닌 등장인물의 삶을 이야기 속의 이야기와 교차한다. 사실과 허구, 인생과 예술의 경계를 탐구하는 이 작품들에서 주로 작가들에 의해 ‘뮤즈’로 대상화되었던 여성들은 신랄한 반격을 펼친다. 소설집을 여는 「알핀랜드」, 「돌아온 자」, 「다크 레이디」는 호색한 시인 개빈과 얽힌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 연작이다. ‘알핀랜드’라는 세계를 무대로 한 대하 판타지 소설로 성공한 소설가 콘스턴스는 얼마 전 남편을 떠나보냈다. 그러나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콘스턴스는 줄곧 들려오며 참견하는 남편의 목소리에 힘입어 컴퓨터를 켜고 거기에 저장된 알핀랜드의 세계로 입장한다. 그리고 그곳에 봉인되어 있던 과거의 연인 개빈에 대한 기억이 깨어난다. 개빈은 식당에서 일하고 소설을 쓰며 그를 부양한 콘스턴스를 그저 애인이자 뮤즈로 여기며 그녀의 작품을 저급한 글로 평가한 것도 모자라, 외도로 관계를 파탄 내기까지 했던 인물이었다. 이어서 「돌아온 자」에서 아내 레이놀즈의 ‘관리’를 받는 개빈은 논문을 쓰고 있다는 대학원생과 인터뷰를 하게 된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사실은 대학원생의 관심사가 대작가 콘스턴스와 알핀랜드 시리즈에서 개빈이 투영된 캐릭터의 정체에 있음이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다크 레이디」에서는 개빈의 또 다른 뮤즈였던 마저리(조리)와 쌍둥이 형제의 인생사, 개빈의 장례식 풍경이 펼쳐진다.
보헤미안, 그게 바로 콘스턴스였다. 콘스턴스는 개빈을 뒷바라지할 돈을 벌기 위해 알핀랜드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개빈은 그런 지원을 진정한 사랑이 수행하는 역할 중 하나로 여겼다.(p.37, 「알핀랜드」)
조연으로, 콘스턴스라는 주연의 뒷배경에 불과한 조연으로 비춰지는 것이 하등 중요하지 않은 척할 수가 없다. 우스운 땅속 요정 이야기나 하는 하찮은 콘스턴스. 괴짜 같은 콘스턴스. 얄팍한 콘스턴스. 여기서 화를 내 버리면 자기 약점만 노출하는 꼴이, 굴욕에 굴욕을 더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p.87 「돌아온 자」)
이름만 소네트인 다크 레이디 소네트는 이제 개빈의 얇은 첫 시집 『묵직한 달빛』에 고이 자리를 잡고서 매 장마다 조리를 조소하고 비난하고 비웃었다.(p.138, 「다크 레이디」)
한편 「죽은 손의 사랑」은 작가인 잭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준 데뷔작의 제목이다. 학생 시절 잭은 룸메이트들에게 빌붙어 사는 대가로 나중에 성공하게 되면 작품의 인세를 그들과 나누어 갖는 계약을 맺는데, 결국 그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소설로 큰 성공을 거둔다. 계약 때문에 수십 년간 착취당해 왔다고 생각했던 잭은 룸메이트들과 재회했다가 무리 중 유일한 여성인 이레나가 판 ‘덫’에 걸려든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지는 것
자신이 지배하는 가상의 세계에 대상을 봉인하는 콘스턴스의 방식과는 달리, 표제작 「스톤 매트리스」의 버나는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남자를 현실적이고 강렬한 방식으로 단죄한다. ‘표적’에 맞는 연상의 남자들과 세 번의 결혼을 했다가 사별한 버나는 북극해 크루즈 여행을 하던 중 밥이라는 남자를 만난 순간 바로 그의 정체를 깨닫는다. 그러나 고등학교 동문이자 50년 전 버나의 인생을 크게 비틀어 버린 밥은 버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새로운 인생을 잘 살고 있다면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해묵은 원한은 흘려보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망설임도 잠시, 결정적 순간에 또렷이 되살아나는 기억은 버나로 하여금 젊은 시절에 하지 못했던 선택을 하게 한다. 버나를 비롯해 애트우드가 그려 낸 노년의 인물들은 복수심이나 오욕칠정과 같은 것이 결코 나이 듦과 함께 퇴색되거나 무디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마지막 수록작 「먼지 더미 불태우기」의 무대는 퇴직하거나 병환이 있는 노인들이 거주하는 양로 시설 ‘암브로시아 매너’다. 나이 든 세대는 ‘가야 할 때’이며 ‘우리 차례’가 왔음을 강조하는 시위대의 위협이 닥치는 가운데, 시력을 거의 잃고 환각을 보는 인물 윌마의 혼란스러운 심리가 세심하게 묘사된다. 『스톤 매트리스』를 읽는 독자들은 서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이야기들에서 특유의 재치와 예리함으로 인물들의 이글대는 감정을 포착하는 작가의 솜씨를 유감없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몸을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 윌마는 혼잣말을 한다. 몸에 초연해지고 비육체적인 고요의 왕국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황홀경 속에서만 그럴 수 있고, 황홀경은 몸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다. 뼈와 힘줄로 이루어진 날개가 없으면 날 수 없다. 황홀경에 들지 않으면 더더욱 몸에 매여 살 수밖에 없다. 기계처럼 작동하는 몸에, 녹슬고 삐걱대고 복수심에 불타는 잔인한 몸에. (p.371, 「먼지 더미 불태우기」)
알핀랜드 7
돌아온 자 57
다크 레이디 107
루수스 나투라 163
동결 건조된 신랑 177
이가 새빨간 지니아가 나오는 꿈 217
죽은 손의 사랑 241
스톤 매트리스 299
먼지 더미 불태우기 333
감사의 말 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