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신체를 빼앗는 신체강탈자를 소재로 한 소규모 문학 공모전인 ‘제2회 신체강탈자 문학 공모전’ 수상작품집. ‘신체강탈자 문학’은 외계의 생명체나 미지의 존재가 인간의 몸을 잠식하고 조종한다는 설정의 SF의 하위 분류로 꾸준히 인기를 얻어온 장르로서, 1938년 존 W. 캠벨 주니어의 중편소설 「거기 누구냐?(Who Goes There?)」를 그 시초로 보며, SF 거장 빅3인 로버트 A. 하인라인의 『꼭두각시 주인들(The puppet masters)』와 잭 피니의 『바디 스내처(Body Snatchers)』 등을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는다. 이번에 출간된 『내 몸을 임대합니다』에는 제2회 신체강탈자 문학 공모전 수상작 다섯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대상 수상작이자 신체를 임대하게 되는 근미래의 모습을 현실 풍자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맑시스트」부터, 외계에서 온 미지의 생명체들이 인간의 몸을 잠식한다는 기본적인 설정에 충실한 『믿습니까』, 『악취』와 게임 속 내용이 외계의 다른 행성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설정의 「트루플래닛」, 콜드 슬립에서 돌아온 누나의 기이한 이타적 변화를 다룬 「자애의 빚」까지 같은 소재이면서도 저마다 읽는 이의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전개와 탄탄한 세계관을 담아내었다는 평가를 받은 수상작들로 구성되어 있다. 김시인 평론가는 도서 말미에 수록한 서평을 통해, 이 작품집을 통해 신체강탈자 문학이 처음 선보인 1938년과는 다른, 이 시대만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한다고 평하였다.
내 몸을 임대하고 돈을 받는다고? 기상천외한 설정의 당선작.
당선작인 「맑시스트」는 종말이나 인류 멸종에 관한 배경을 기반으로 하는 신체강탈자 문학과 궤를 달리 하는 작품으로서, 대학 시절부터 지독한 맑시스트로 활동하며 자본주의에 맞서던 인물이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 ‘몸을 임대하고 돈을 준다’는 메시지에 홀리듯 찾아가 자기 몸을 맡기고 기억을 지워버린다. 타인의 건장한 몸으로 몇 년 동안 살아오며 완전히 자본주의에 물들어버린 지금, 과거의 맑시스트의 몸으로 돌아가길 거부하고, 결국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인공 신체를 통해 맑시스트로서 진정한 자기 이상의 실현으로 도달한다는 결말에 심사위원들의 극찬이 이어졌다. 심사를 맡은 송경아 소설가는 “현실과 풍자적 상상이 정밀하게 교차하며 포스트휴먼 사회로 넘어가는 유머러스한 전개가 일품”이라며 당선작에 대한 호평을 남겼으며, 김종일 소설가는 “‘내 몸 마련’이라는 자본주의의 과제에 내몰리다 ‘링고’라는 묘체 속에 기생하는 수백의 자아 중 하나가 되어 몸은 물론, 자아마저 빼앗기고도 기뻐하는 결말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섬뜩하다.”라고 심사평을 남겼다.
*황금가지 소규모 공모전은?
황금가지의 소규모 공모전은 35회째 진행되어 온 문학 공모전으로서, 2009년 제1회 ZA 문학 공모전을 시작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 다양한 주제로 문학상 및 공모전을 개최하여 이십여 권의 도서가 출간되었고, 여러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는 등 황금가지가 기획하고 발전시킨 독보적 문학상 형식이다. 장편소설만이 아니라 중편, 단편 소설 등 다양한 분량의 소설을 주제로 공모전을 개최할 수 있고, 적합한 앤솔러지 구성도 용이해 최근에는 여러 출판사나 플랫폼이 이 문학상 형식을 따라하고 있는 추세다.
<줄거리>
믿습니까(가양)
로켓 잔해가 지구로 떨어진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로켓 잔해의 추락을 막은 것은 지구인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한 외계의 생명체였다. 그는 인간을 돕는다며 피해 예정지였던 마을에 안착한다. 곧 사람들은 그를 ‘그분’이라 여기며 숭배하고, 이러한 믿음은 전염되듯 빠르게 퍼진다.
맑시스트(김상원) -당선작
‘회원님의 몸을 보관하고 있습니다’라며 빨리 찾아가지 않으면 보관료가 누적된다는 기이한 문자를 받은 유소유는 의구심에 찾아간 곳에선, 놀랍게도 사람의 몸을 임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몇 년 전, 원래 몸을 맡기고 현재의 몸을 빌린 후 기억을 지웠다는 얘기를 듣는다. 게다가 현재 사용중인 몸의 임대 연장이 불가하여 원래 몸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데, 현재의 탄탄한 몸에 비해 관리가 전혀 안 된 비루한 원래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 절망한다. 그런 유소유에게 시설의 소장은 인공 신체라는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악취(녹희재)
끔찍한 토막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베테랑 형사 최설진은 후배 형사인 이민재에게 사건 최초 제보자의 탐문을 지시한다. 그러나 탐문을 간 이민재의 연락이 없고, 결국 그를 직접 찾아간 최설진은 어딘가 행동이 어수룩해 보이는 이민재의 모습에 의아해한다. 그리고 곧 이민재의 몸에서 나는 악취와 함께 그의 이상한 행동 때문에 최설진은 이민재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자애의 빛(이건해)
10년 전 병으로 콜드슬립에 들어갔던 누나가 치료를 받고 다시 가족의 품에 돌아온다. 일상으로 복귀하게 된 누나는 어느 날부터 갑자기 봉사활동을 다니기 시작한다. 원래 성격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극단적 누나의 이타심에 나는 조금씩 의문을 품게 되지만, 누나의 주변인들은 형부터 시작해서 모두 전염되듯 자애로운 모습이 되어만 간다. 그리고 어느 날, 자신조차도 점차 그들의 모습을 따르기 시작하는 데 놀라고 만다.
트루플래닛(우재윤)
현실의 세상은 잊고 게임 ‘트루플래닛’에 중독되듯 빠져 살던 고윤아는 게임 속 아바타 하나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자신을 쫓아오는 데 놀란다. 헤이달로스라는 이름의 게임 길드에 소속된 추적자는 윤아가 어디로 가든 쫓아온다. 놀랍게도 게임 속 광장에서는 이 헤이달로스라는 이름의 기괴한 아바타들이 전염처럼 급격히 늘어나고, 모두 똑같이 윤아를 노리고 쫓아온다. 그리고 현실에서도 기이한 일이 벌어지는데.
믿습니까 7
맑시스트 39
악취 79
자애의 빛 135
트루플래닛 193
서평 : 이시대 가장 불편한 괴물의 귀환 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