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괴물을 품고 살아간다”
로맨스릴러 공모전 대상 수상작 『너는 누구니』
아름답고 위태로운 청춘을 그려낸 긴장 넘치는 로맨스
가면을 써야 숨을 쉴 수 있는 소년과 비밀을 품고 달려가는 소녀의 만남을 통해 사람이 누구나 간직한 채 살아가는 마음속 어둠에 대해 그린 작품 『너는 누구니』가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제목 ‘너는 누구니’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로, 작가는 이 글을 통해 우리가 과연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질문을 던진다. 전작 『페인트』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이희영은 전학생 예진이 아름다운 외모 안에 위태로운 내면을 품고 있는 서하와 만나 그가 품고 있는 비밀을 마주치는 과정을 긴장감 넘치게 그려내어, 로맨스와 스릴러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고 있는 작품을 완성시켰다. 이 작품은 “일상 속의 스릴러와 로맨스의 긴장감 공식을 성실히 따라가는 작품”, “꼭 무슨 일이 곧 터질 것처럼 긴장을 고조시키는 전개” 등의 심사위원 호평을 받으며 로맨스릴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로맨스릴러’는 ‘로맨스’와 ‘스릴러’를 합친 말로 스릴러다운 긴장감 있는 서사와 로맨스다운 달콤한 내용이 잘 어우러진, 오싹함과 달달함을 오가는 작품을 주로 지칭한다. 색다른 로맨스 소설을 찾아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에서 진행된 로맨스릴러 공모전에는 2달의 기간 동안 총 127편의 다양한 작품이 접수되었으며, 이중 로맨스와 스릴러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는 성실함과 가독성, 이야기의 매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너는 누구니』가 최종 대상작에 선정되었다.
“너랑 있으면…… 멈춰 버린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아.”
“네 시간은 왜 멈춰 있는데.”
아버지의 장례식 후, 어머니와 함께 대도시 S로 전학 온 예진. 예진은 전학 온 첫날 도서관에서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한 소년과 마주친다. 아이의 이름은 최서하. 서하는 ‘얼굴모범생’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잘생긴 외모에 전교 1등의 성적, 모두에게 친절한 성격 등 겉보기엔 완벽해 보이는 아이다. 아버지의 오랜 암 투병으로 빚만 잔뜩 남은 어려운 집안 환경 덕분에 그 흔한 학원 한번 다닐 수 없었던 예진은 자신과 다른 아이들의 처지가 다르다는 것을 늘 인식하며 산다. 대학에 가고 취직할 때까지 공부 외에는 눈 돌리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한 예진이지만 서투르지만 저돌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서하에게 흔들리는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둘은 천천히 관계를 맺어나가지만, 서하를 알면 알수록 그가 보이는 모순과 어둠 때문에 예진의 마음속에는 기묘한 의구심이 자라기 시작한다. 마침내 서하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가면 속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예진은 자신이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던 비밀을 서하에게 말하겠다고 결심하는데…….
우리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
모두가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하게, 괜찮다고 생각했으면
일찌감치 어른이 되어 버린 성실하고 이성적인 캐릭터인 예진은 작가를 대변하는 페르소나 같은 존재다. 너무나 열심히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든 청춘들에게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해도 된다고,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는 이희영 작가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얘기한다. 처음 이 글을 쓸 때 이야기의 처음과 끝만 정해두고 시작했는데 2주 만에 이야기의 초고가 끝나 버렸다고,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직은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고 겸손하게 표현하지만, 아침마다 9시면 일어나서 컴퓨터 앞에 앉아선 정해진 분량을 써내려가는 완고할 정도로 성실함을 갖춘 작가다.
본문 중에서
서하가 꼭 내 손을 붙잡았다. 손에 느껴지는 악력이 마음까지 아프게 옥죄었다.
“네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야?”
절대 울지 않겠다, 다짐했다. 서하에겐 우는 것조차 미안했다. 그러나 그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서하는 모를 것이다.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진심으로 원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 얘기를 꺼냈는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너야. 최서하 바로 너.”
서하의 얼굴에 희미하게 안도의 빛이 스쳐 지났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뭐를?”
“걔가 널 죽이려 했다며.”
서하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맑은 갈색 눈동자가 수정처럼 반짝이고, 하얀 얼굴에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서하의 창백한 시선이 다시금 창밖으로 돌아섰다.
“할 수만 있다면.”
“…….”
“나도 죽이고 싶어.”
나는 다만 두려웠다. 내가 점점 더 서하에게 빠져 들게 될까 봐. 나를 향해, 투명하게 반짝이는 눈동자를 잊지 못할까 봐 벌써부터 무서웠다. 할 수만 있다면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크게 나를 옭아맨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호기심이었다. 서하를 둘러싸고 있는 이야기들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과, 달의 뒷면처럼 감추어진 모습까지, 이 모든 것들이 자꾸만 내 등을 서하 곁으로 떠밀었다.
서하가 확 내 팔을 잡아끌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선명하게 느껴지고 코끝으로 벚꽃 향기가 강하게 풍겨 왔다. 내 몸을 감싸 안은 서하의 두 손이 가늘게 떨렸다.
“너랑 있으면…… 멈춰 버린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아.”
서하의 한마디에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했다. 멈춰 버린 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힘겹게 내뱉은 그 애의 한마디가 자꾸만 가슴을 옥죄었다. 나는 품에서 벗어나 물끄러미 서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네 시간은 왜 멈춰 있는데.”
“나는.”
서하가 초조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힘들어하는 서하를 보면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다그칠 수도, 애원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두려운 것인지도 몰랐다.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만약 그곳을 본다면 영원히 서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불길함이 느껴졌다. 판도라의 상자를 앞에 둔 것 같았다. 불타는 소돔을 뒤돌아보려는 롯의 아내가 된 기분이었다. 서하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설 때마다 나는 결코 다가가지 못했다. 내가 다가간 거리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멀리 서하가 물러설 것 같아, 바보처럼 항상 그 자리에 못 박혀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자신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한 곳에서 서하를 기다리는 일이 진정 서하를 위한 일인지 나는 자꾸만 혼란스러웠다.
차례
시작하는 이야기 – 7
1장 – 31
2장 – 52
3장 – 73
4장 – 93
5장 – 112
6장 – 139
7장 – 164
8장 – 196
9장 – 222
10장 – 250
11장 – 289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 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