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그리고 생존자들의 섬
시리즈 밀리언셀러클럽(한국편) 25 | 분야 좀비
제1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가 백상준의 첫 장편소설 『좀비 그리고 생존자들의 섬』이 출간되었다. 좀비로 뒤덮인 세상을 위트와 유머로 풀어낸 「섬」, 시각과 청각 장애를 가진 두 여성의 험난한 생존기 「천사들의 행진」, 좀비와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패잔병들의 이야기 「거짓말」 등 사건과 이야기가 연결된 세 에피소드로 좀비 재난의 시작에서부터 충격적인 반전을 담은 결말까지 흡인력 있게 담아냈다. 고립된 주인공의 푸념에서 흘러나오는 한국적 정서나 위기 상황에서도 군대 문화로 인해 벌어지는 패잔병 에피소드 등은 기존의 해외 좀비물과는 다른 한국적 재미를 선사한다.
‘좀비’를 통해 드러나는 현대인의 비인간성.
‘좀비’물은 세기말적 세계관 속에서 비인간적, 비사회적 상황을 연출하는 데 탁월한 소재이다. 『좀비 그리고 생존자들의 섬』에서도 재난 후에 벌어진 섬뜩한 상황을 통해 인간성을 잃은 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섬」에서 아파트에 고립된 채 가까스로 생존한 주인공이 주변 마트를 돌아다니며 생필품을 챙겨오는 동안에도, 생존한 타인을 의심하며 소통하지 않는 모습은 재난 이전의 아파트의 이웃간의 소통 단절을 연상시킨다. 마트의 물품을 경쟁하듯 챙겨오며, 승리의 우월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죄책감을 느끼는 주인공의 모습은 현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다. 「천사들의 행진」에서는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각기 가진 두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사망보험금을 노린 남편의 계략 때문에 실명한 후, 남편으로부터 도망쳤다가 그곳에서 청각장애인을 만나 동거하게 된 두 여성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생존한다. 하지만 이웃들에겐 그저 손가락질의 대상이자 무방비한 약자였다. 이웃 남성들의 성희롱과 폭력이 계속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발생한 좀비 재난은 오히려 이들에게 천국과 같은 생활을 안겨준다.
“자신에게 사후의 천국은 없다고 믿었다. 천국은 행복한 사람만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갈 수 있다고 해도 서희가 꿈꿀 수 있는 천국의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이 꿈꾸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세상일뿐이었다. 너무나 평범해서 당연한 세상이 서희가 꿈꿀 수 있는 천국이었다. 그러나 그런 곳조차도 서희는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죽은 뒤에는 지금처럼 영원한 어둠만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채선처럼 기댈 친구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서희에게 좀비의 창궐은 오히려 현실의 구원 같았다.”
한국적 정서가 가득 담긴 ‘좀비’ 이야기
『좀비 그리고 생존자들의 섬』는 기존의 해외 좀비물과 다른 친숙한 한국적 사고나 상황 등이 독자들에게 친숙하면서도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중국의 황사 바람이 좀비 바이러스를 몰고 왔을거라는 추측이나, 생존을 위해 모아둔 쌀에 벌레가 생기자 부모님들이 했던 것처럼 패트병에 보관하여 벌레를 막는 아이디어, 산동네 재개발 지역의 공사장에서 폭발물을 얻기도 하고, 위기시 구매 1순위인 라면이 사실은 유통기한 6개월밖에 안 되는 사실, 입추나 말복을 기억하고 외국인 구조대를 만날 걸 대비해서 TOEIC을 공부하는 웃지못할 상황 등이 연출된다.
“오늘 부모님을 죽였다. 어차피 죽은 거나 마찬가지니, 두 번 죽이는 짓이 된다. ‘저를 두 번 죽이는 짓이에요.’ 정준하의 유행어가 생각난다.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말 같다. 어차피 치료제도 없고, 군대가 와서 죽일 거라면, 차라리 내 손으로……”